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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칼럼 
긴 안목으로 
‘내가’ 만들어가는 
‘온전한 용산공원’

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이국적인 도시?
미군기지

‌90년대 중반에 우연한 계기로 용산 미군기지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내 눈에 비친 용산기지의 광경은 실로 큰 충격이었다. 그것은 익히 알고 있던 군부대라기보다는 이국적인 도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여의도만큼이나 큰 부대 안에서 여유롭게 쇼핑하는 군 가족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지 밖 서울에는 대형마트가 흔치 않은 시절이었지만, 기지 내 매점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서울 택시와는 생김새가 다른 택시들과 많은 차량들이 기지 안을 돌아다녔다. 많은 건물들, 넓은 공원, 운동장, 그리고 체육시설들.... 기지 안에는 심지어 미국 대학의 분교도 있었고, 그 대학에 다니던 같은 또래 대학생을 만나기도 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누추하고 허름해서 늘 모자람이 일상인 당시 우리 군부대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든 것이 풍요롭게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는 미군기지.... 서울의 한복판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우리가
과연 
용산공원을
가질 수 있을까?

‌내가 민간인의 신분으로 그곳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진행되던 용산기지 반환의 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금단의 땅이었던 용산기지는 사실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우리 곁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1990년에 한미 양국은 용산기지의 이전 및 반환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실제로 12만평에 이르는 골프장 부지를 반환하기도 했다.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이 있는 바로 그 자리다. 1993년에는 기지 이전비용 부담 문제로 인한 한미 갈등 끝에 당초 이전계획이 취소되었으나, 이미 기지 이전과 반환이라는 큰 흐름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비록 당초 합의서는 파기되었으나 90년대 미군은 용산기지의 개방과 반환에 대해 이전보다 더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비용문제만 해결되면 용산기지는 결국 우리 품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흐름은 조금씩 현실이 되었다. 합의서 파기 후 10년이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양국은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확정짓는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용산기지의 이전은 지금까지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2004년 용산기지의 반환이 확정된 이후, 반환 부지의 이용을 둘러싸고 논쟁이 전개되었다. 사실 이 땅은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이후, 100년 넘게 ‘온전히’ 우리의 땅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곳의 용도는 새로 정하면 될 일이었다. 한참 논의 끝에 우리는 ‘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시민들의 머릿속에서 용산공원은 비어 있는 땅이었으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따라서 우리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공원’을 선택했다.

마침 2000년대는 ‘삶의 질’이 화두가 되어 사회 곳곳의 변화를 몰고 오던 때 아니던가? 우리도 뉴욕의 센트럴 파크나 런던의 하이드 파크 못지않은 공원을 갖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

금방이라도 우리의 땅이 될 것 같던 미군기지의 반환은 더디기만 했다. 2004년 협정에서는 2008년까지 반환을 완료하기로 했지만, 그 계획은 다시 10년이 늦춰져서 2018년까지 완료하기로 했다. 용산기지에 있던 미8군과 주한미군사령부가 평택으로 이전해갔다. 하지만 용산기지의 이전은 2021년 1월 현 시점까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아직 우리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작년 말 기지 전체 면적의 2% 정도에 해당하는 부지를 반환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반가운 소식이다. 한미 양국은 이 부지를 점진적으로 조금씩 반환하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시민들이 보기에 그것은 너무나도 더딘 진행이다.

‌이렇게 느리게 진행되는 일정 속에서 시민들은 용산공원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 잊어갔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과연 용산공원을 가질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2030년까지 용산공원은 정말 만들어지는 것인지, 아니, 그 전에 미군은 정말로 용산기지를 반환하기는 하는 것인지,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다. 100년 넘도록 온전히 우리 땅인 적이 없었고, 한미 간 합의가 이뤄진지도 30년이 넘게 지났지만 큰 진척이 없는 걸 보면 그렇게 여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온전한 용산공원’을 위해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큰 물줄기를 볼 필요가 있다. 비록 더디지는 하지만 용산기지의 반환은 30년 넘게 꾸준히 진행되어 왔으며 용산기지는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비용의 분담 문제로 반환계획이 부침을 겪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의 전개과정도 매우 지난하겠지만, 결국 그 땅은 ‘온전히’ 우리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온전하다’는 것은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용산은 구한말 청나라 군대가 주둔하기 이전처럼 우리 민족에게 ‘온전히’ 돌아온다. 시간이 조금 걸릴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날은 온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우리 품으로 돌아오는 그 땅을 ‘온전한’ 공원으로 만드는 일이다. ‘온전하다’는 “잘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다”는 의미도 있다. 사실 정작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용산공원을 잘못됨이 없이 바르고 옳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정녕 그 땅을 보듬어 안을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미 그 땅에는 140년 묵은 ‘타자’의 흔적들이 있고, 그 역시 이제 우리 근현대사의 일부가 되었다. 청년시절 나에게 충격을 줄 만큼 그곳은 바깥과는 다른 풍경과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 안에 있지만 우리와 다른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 금단의 땅으로서 지도 위에서도 단지 평화로운 초록의 빛깔만 띠고 있을 뿐이지만, 그곳에는 900동이 넘는 건물이 있고, 땅 아래로도 우리가 알 수 없는 구조물들이 있다. 당장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 140년 역사를, 
적어도 미군 75년의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온전한’ 용산공원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이것에 대한 우리의 답을 찾는 과정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은 우리 국민들은 그 땅을 한 번도 ‘온전하게’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땅을 온전히 갖기 위해서는 스스로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열띤 토론을 해야 한다. 온전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논쟁해야 한다. 이것은 국가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서울시가 대신 고민해줄 일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온전한’ 용산공원을 만들어가는 것은 고스란히 돌아오는 그 땅을 ‘바르고 옳게’ 이용할 방안을 ‘내가’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용산공원은 그냥 지도 위에 초록을 칠한다고, 설계가들이 멋있는 그림을 그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전히 땅을 되찾는 것도 시간이 걸리지만 지난 140년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고 앞으로 미래를 계획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용산기지가 조금씩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것이 우리가 준비할 시간을 갖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갖고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똑바로 쳐다보고 직시해야 한다.


‌시간표에 따라 혹은 조금 느리게 꾸준히 우리 곁으로 다가올 용산을 ‘온전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제 긴 안목을 가지고 ‘내가’ 나서야할 때이다. 작년 8월부터 용산기지 내 일부 지역이 시민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작년 말에 반환키로 합의된 그 지역에 대해서도 조만간 개방이 이뤄질 것이다. 전쟁과 식민지 통치, 분단으로 잃어버렸던 사랑스런 자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한번쯤 그곳에 가 볼 일이다. 그리고 두 눈 부릅뜨고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온전한 용산공원’ 조성에 관심을 갖고 동참해야 한다.